유럽 선교를 위한 한국 교회의 도전

유럽 선교를 위한 한국 교회의 도전

정홍기 0 1,706 2006.11.19 03:44
유럽 선교를 위한 한국교회의 도전



변칙 범주의 힘



한국 축구는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이후 48년 동안 한번도 l6‘강에 오르지 못하고 여섯 차례나 일차 전에서 탈락하는 비운을 경험하였다. 헌데 지난 2002년 6월 l4일 홈 그라운드에 서 그 쓰라린 환멸을 극복하였다. 포르투갈 전에 승리 한 후에는 삼백오십만 이상이나 되는 사람들이 도심으로 몰려나와 환호성을 지르며 국가 대표팀을 격려하고,응원하였으며 축 배를 나누었다. 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심지어 눈물이 고이기까지 하였다.

왜소한 한반도는, 그것도 반 쪽짜리에, 태극기와 붉은 응원 복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로 뒤 덮 였으며 이 전국민적 열기와 축제는 좀처럼 가라 앉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한반도를 뒤 흔들었 다. 한국 국민은 그 기적의 마술사인 화란의 ‘거스 히딩크” 코치를 열렬히 지원 하였다. 그는 2001년 한국 국가 대표팀의 코치에 임명 된 후 한국 축구를 세계 축구에 버금가는 위치에 올려 놓았다. 홈 그라운드에서 l 6강에 진입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을 그는 저버리지 않았다.

우선 먼저 팀의 성향을 분석한 그는 자신의 페러다임에 적합한 선수들을 주요 포지션에 배치 하였다. 개방적이며 열정적으로 배우려는 한국팀의 자세에 매료 되긴 하였으나,경험 부족과 선 후배를 분명히 하는 한국 문화의 전통이 장해가 되는 것을 알고 과감히 그 전통 을 극복해 나갔다. 외부인으로서 그의 관찰력은 선수들을 격려하고 배치하는데 적절하였다.

나는 여기서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서양인의 사고와 열정적이고,충실하고,서양인에게 우호 적인 한국인의 조화가 보기 드문 명작을 연출해 냈다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한국 축구 스타 일을 바꾸기에는 히딩크의 역량이 절대적으로 부족 할 수도 있었고 아주 위험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서양인의 통찰력을 적용한 훈련은 적중 하였다.

외부인의 견해는,비록 현저히 다르기도 하지만,전통적으로 하던 습관을 유지 하기보다 새로운 페턴을 사용해 보도록 조언하는데 가끔은 아주 유익 하 다. 마치 장기 나 바둑을 둘 때 구경꾼의 수가 앞선 것처럼….

히딩크의 작품은 서양인 과 동양인의 ‘문화적 결합의” 작품 이었다. 나는 이것을 레비 스트라우스가 말한 이항 대립의 [binary oppositions] 범주를 벗어난 변칙 범주에 [anomalous categories] 속한 특징의 장점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1]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축구와 히딩크 사이에서 일어난 훈련의 원리들을 기독교 선교에도 적합하게 적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기독교 교회는 그들이 전통적으로 해오던 예배 형식이나 선교 사역들에 대해서 아주 익숙해 있으며 아무런 저항 없이 구조화된 반복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적이거나 구조적인 반복을 거듭 하면서도 아무런 갈등을 느끼지 못하는 그리스도 인들에게 외부인 들로부터의 변화에 대한 도전은 신선한 충격을 가져 다 줄 수도 있다.

특히 서양의 교회들은 한번도 외부인 들로부터 도전이 없이 지금까지 항상 다른 사람들을 변화하는 데에만 익숙해 왔다. 유럽의 그리스도인들,대부분이,다른 대륙이나 문화권에서 외부인으로서 비평적 조언을 듣기보다 비평적 견해를 조언하는데 익숙해 왔다. 따라서 그들 의 방법이,마치 한번도 물갈이를 못한 연못처럼, 가장 최선의 방법인양 생각하고 있다. 자연히 사람들은 다람쥐 판에 박힌 듯 계속되는 기독교에 대해서 지루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지구촌 시대의 지 구촌 문화를 경험하고자 기웃거리고 있다.[비록 서양을 떠난 거의 대부분 의 지구촌 문화는 이방종교 문화이지만] 만일에 사람들이 새로운 통찰력에 도전을 받지 못하면 성장은 물론 이거니와 신선한 경험을 맛보지 못한다.

어떻게 도전을 받아 들일 것인가:

아주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다른 범주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관찰하고 조언하도록 허락하는 것이며 다른 랜즈를 통해서 자신을 성찰해 보는 것이다. 두말 할 것 없이 지루한 기독교 전통을 반복해서 지키고 있는 서양의 그리스도 인들에게 다른 범주에 속한 그리스도인 들과의 교제를 통해 신선한 경험을 하게하는 것은 변칙 범주의 특징을 맛보게 하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 할 것이다. 사실 유럽인 들이 새로이 선호하는 종교들이 불교 힌두교,만종 교 등 이다. 물론 그러한 종교들에 진리가 있어서 라기보다 그러한 종교들이 다른 문화권에 서 유입 되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유럽인들은 진리 혹은 상대적인 진리에 비중을 두기보다 문화적 변화의 경험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 같다.

현대화는 세상을 하나의 마을로 묶어가고 있다. 세상의 어떤 문화도 우리의 안방에서 경험 하거나 즐길 수 없는 것이 없다. 현대 기술 문명이 세계를 우리의 안방으로 끌어드리고 있는것 이다. 예를 들어 다른 음식 이 나 종교, 삶을 경 험 하기 위 해 특별 히 다른 나라들로 여행을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다양한 문화들이 미디어나 이민자 들로부터 반입되고 있으며, 가끔은 한국이나 중국 일본 식당 등에서 젓 가락 사용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 시대에 뒤진 사람들로 취급 되 기도한다. 이러한 문화적 변형들은 사람들을 변화의 물결에 벗어나 뒤쳐진 삶을 살기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그러한 문화적 변천들을 즐기도록 미디어에 의해 강요 받고 있다.

서양의 교회들이 고려 해야 할 것들이 바로 그러한 문화적 경험들을 어떻게 교인들에게 갖게 하냐 하는 것이다. 물론 세속적인 문화적 경험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문화권의 그리스도 인들의 삶과 생각의 형태 세계관등을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다른 문화권의 사람 들에게 성경 지식을 어떻게 전달하는가 보다 그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고 전파하는 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예를 들어서 한국의 그리스도인 들에게 성경 지식이 부족한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고 전파하는가가 문제이다.다른 랜즈가 필요 하다.

나는 구 기독교 국가인 유럽인들이 영적인 삶을 전적으로 방관하거나 이혼 했다기 보다는 기독교라는 종교에 지쳐있어 다른 동양의 종교에 무슨 신비스러운 것이 있나 하고 기웃 거 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문화적 경험에 불과하지 진리를 경험하지는 못 한다. 진리는 오래 전부터 유럽 대륙에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 도가 영원 하기 때문에. . .

따라서 거스 히딩크가 축구 코치로서 문화적 변칙 범주를 통해 기적을 이루어 냈다면 우리 그리스도 인들도 문화적 변칙 범주의 경험을 통해 유럽의 교회들에 활력소를 불어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물론 이것은 한국교회가 유럽의 뒤를 이어 세속화 되어가는 것을 막아 보고자 하는 노력을 배제하지 않을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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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 Levi- straus 말한 이항 대립 (Binary oppositions) 이란 두 개의 서로 다른 범주를 말 하며 어두움과 빛이 분리되고 하늘과 땅의 범주들로 분리된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이항 대립은 인간의 모든 언어와 문화에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서구의 문화와 언어는 한국의 (동양) 문화와 언어에 많은 부분이 이항 대립적이다. 그리고 그러한 대립상의 양 범부가 지닌 특징들을 부분적으로 갖는 것을 변칙범주 (anomalous categories) 라 하는데 예를들면 서구인의 사고가 논리적이고 과학 적 이라면 한국인의 사고는 추상적이고 경험적이며, 서구인의 삶이 개인주의적 문화라면 한국인은 집단적 문화 이다. 변칙범주는 이항 대립의 어떤 범주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그 경계를 흐리게 하 는 반면 양쪽범주의 특징을 고루 가지고 있으므로 그 파생의 효과가 증대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냉철하고 과학적 인 서구식 기독교가 열정적인 한국적 신앙양태와 만날 때 새로운 신앙양태를 양 산 한다. 서구에서 사는 한국인들 은 이항대립 된 양쪽 범주의 특징을 고루고루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변칙범주의 특징이 극대화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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