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다원주의와 기독교

종교 다원주의와 기독교

정홍기 0 1,800 2006.09.01 02:03
종교 다원주의 시대의 그리스도의 유일성

정홍기 목사 [amoshong@hanmail.net]

네가 먹어서 배 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 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 양이 번성하며 네 은 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 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신 8:10-14)

개요

14년 동안 이곳에 살면서 지금처럼 오랫동안 비가 내리는 것을 본적이 없었다. 물이 온 도시를 덮어가는 느낌을 갖는다. 혼잡한 교통을 피해 골목길을 누비는데 옆에 타고 있던 오비디우 형제가 [지난 5년동안 관계를 통해 전도를 한 루마니아 정치인으로 경제학과 사회학을 전공 하기도 함] “죽음 후에 삶이 있다는 것은 정말 새로운 사실이야, 정교회 신부들은 한번도 그런 사실을 가르친 적이 없어 그래서 정교회 사람들은 절대로 그 사실을 믿지 못할 거야” 하면서 지난 주 내가 한 설교를 되풀이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지난번에 독일에서 온 한국 학생이 그러는데 자기 동료들 [독일인] 에게 예수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은 무 슬림 들에게 예수 이야기를 꺼내는 거 보다 더 어렵다고 하드라 하면서, 서구 사회의 기독교에 대한 냉대를 아 쉬어 하였다.

서구 유럽에서 기독교 복음을 전하기란 이슬람 권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 보다 더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과, 동 유럽에서 정교회 사람들이 복음에 대해서 얼마나 무지한 가를 보여주는 단편적인 이야기이다.

유럽 연합이 새롭게 고안한 헌법에는 그들의 역사 속에서 세계관과 가치관을 세워가는데 길잡이 역할을 했던 오랜 전통의 기독교적 가치와 유산을 뽑아 내었다. 유럽에서의 기독교적 유산은 그들의 역사요 문화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 문화, 다 종교 사회라는 포스트 모던적 사회 규범으로 인해 기독교를 유럽의 뿌리 깊은 종교로 인정하지 않는다. 유럽은 이제 더 이상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단일 종교 –기독교- 클럽이” [Europe is not a single religious club] 아니고 다량의 종교를 수용해야 하는 다 종교 사회가 되었다. 당연히 유럽은 문화적, 종교적, 언어적, 다양성을 존중 해야만 할 것이다.

영적 도덕적 유산이었던 기독교의 가치를 버리고 유럽 연합은 개인주의 와 인간의 우주적 존엄성, 자유, 평등, 단결을 강조하는 새로운 헌법을 만들었다. 그러는 반면 자유에 반 하는 모든 종교적인 것들을 거부하는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교회와 정부의 분리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역사적 깊은 뿌리인 기독교적 유산을 버리는데 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것이 개인의 자유와 소수 민족을 존중 한다는 데서 기인한다.

대 부분 기독교 이외의 종교는 힌두교와 이슬람 권에서 이주해온 이민자들 이거나 자신들이 과거에 지배했던 식민지 민족들의 자발적 증가에서 기인한다. 과거 식민지 시대의 자손들에게 관대 하려는 겸허한 자세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하지만 소수민족을 존중 하기 위해 자신들의 대륙에 주인이며 다수인 민족들의 문화와 역사의 유산인 기독교를 버리는 행위는 마치 부모에게는 불 친절 하면서 이웃에게 친절한 자식을 보는 것 같아 내 마음이 씁쓸하다. 또 하나 유럽 연합의 지도자들이 기독교를 그렇게 철저히 배척 하는 데는 그 동안 교회가 그리스도가 없는 기독교인들과, 성경 말씀이 없는 교회로 전락 했다는 결과이기에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기독교는 문화나 역사나 신학이나 철학도 종교의식도 아닌 예수를 믿는 믿음에 기초를 두고 있다. ‘기독교는 한 사람 예수와 한 권의 책 성경의 종교이다. ‘

따라서 서구사회가 다원화 사회가 되어가면서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세주라고 하는 믿음을 포기하고 있는데, 그러한 서구의 문화는 지구촌 시대이며 커뮤니케이션이 발달로 과거에는 더디거나 묻혀버릴 수 도 있었던 아시아 나 아프리카 등 다른 대륙으로의 확산이 가속화 될 것이 뻔 하기에 우리는 거기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나는 유럽사회가 탈 기독교화 되어 가는데 다음의 세가지; 사회적인 변화, 세속주의 그리고 현대화 등을 주요 변화의 요인으로 보고 있다.

1. 사회적인 변화: Change
저술가요 사회학자이며 신학자인 프랑스의 작스 엘룰 [ Jacques Ellul:(1912-1994)] 은 현대 서구 세계가 이룩한 업적을;
1] 자아에 대한 의식이 일어나면서 개인을 부족과, 자연, 그리고 우주로부터 이탈하는 결과를 낳았고,
2] 비평적 과학적 연구 방법을 발전 시키었으며,
3] 가장 중요한 인간의 자유와 개인주의를 중요시하는 것이라 하였다.
19세기 유럽에 일어난 변화 중 하나는 중세부터 전해오던 농촌 중심의 삶이 도시 중심의 삶으로 변화 되면서 땅을 중심 한 경제에서 산업을 중심 한 경제로 바뀌고, 메스 미디어가 발전 하면서 기인 했다고 볼 수도 있다.

자연히 인간의 삶에 편리함을 추구하고, 새로운 가치와,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새워야 하며, 새로운 삶의 우선 순위가 정해지고, 새로운 목표가 정해 지면서 새로운 문명을 일으키게 되었다. 산업에 혁명이 일어나면서 새로운 기술이 발전하고, 제조업을 발전 시키고, 도시들을 새롭게 정비하면서, 상업의 발전을 가속화 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웃 나라들로 확산되면서 전통적 문화를 소홀히 하고 기술의 문명을 도시의 삶에 맞추는데 주력하게 된다. 이 모든 변화는 인간의 경제 질서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왔다. 대량 생산을 장려하고 소비를 촉진 하기 위해 쇼핑몰을 건설하며 새로운 정치 질서가 만들어 진다. 이러한 새로운 변화의 시대를 현대화라 부른다 그리고 이 현대화는 자연히 세속화적인 사회를 구성하였다.

2. 세속주의: The secularism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경향은 결코 새로운 일은 아니다. 단지 그것이 오늘날 현대 문화와 사회의 조직 속에 무신론적이고 세속주의적인 사고들이 깊이 잠식해 있는 것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세속주의는 부유한 나라들에서 나타나는데 주로 가치관과 행동에서 볼 수 있다.

세속주의 또는 자연주의라는 개념은 17세기 Rene Descartes 1596-1650 에 의해서 부상했다. 그는 우주를 인간이 연구 할 수 있는 거대한 하나의 기계라고 감지했다. 따라서 관찰자 (Observer) 와 사물 (Object) 사이를 구별하고, (Mind) 와 (Matter) 로 구별했다. 이 구별을 Cartesian dualism 이라고 부른다. 우주의 연구는 과학자들의 몫이고, 마음과 영혼에 대한 연구는 철학자와 신학자들에게 남겨주었다. 세상의 모든 사건들은 과학적인 증명에 의해서 사실인가 아닌 가로 판명된다. 그 모든 사건의 원인과 효과를 과학이 증명한다. 자연히 하나님의 계시가 밀려나게 되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세속적인 생각을 발전시켰다. 그의 자연과 은혜에 대한 견해가 인간의 독립을 발전시켰다. 성경적 타락은 '인간의 의지가 타락은 했으나 지적인 타락은 아니다' 라고 하며 자연신학을 가져왔다. 그의 철학적 신학이 자치적 인본주의 철학주의를 가져왔다.

'인류에 대한 적절한 연구가는 인간이다.' Alexander Pope " The proper study of mankind is man " 세속적인 단어 Seculer 는 라틴어의 Saeculum 시간 또는 세대 라는 의미에서 기인한다. 세속주의라는 의미는 사람을 부를 때 그는 전적으로 시간에 묶여있는 역사의 피조물로서 영원에 대한 비전이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존재나 하나님이 인간의 일에 대해 역사 할 수 있음을 믿지 못한다. 도덕적 기준은 자신이 사는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용납되는 게 기준이다. 모든 것이 유행에 따라 변한다. 영원한 가치는 없다. 세속주의는 피조물이 창조주를 귀찮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고려해야 할 세속주의의 도전은 세속적인 것으로부터가 아니라 거룩한 장소에 세속이 서는 것이다.

19세기 떠오르는 사회학자들은 발전하는 산업 사회에서 종교는 점차적으로 그 위치를 일어간다고 믿었다. 신학적 미숙함, 상징적인 예배의식, 성스럽다고 생각되는 행위들의 실습들은 현대 사회에서는 과거에 묻힐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종교는 설 자리를 잃게 되고, 관료화와 이성주의 그리고 도시화를 등에 업은 세속주의가 20세기 사회 중심에 자리를 잡았다.

“언잰가 이 세상은 성스러운 것들-생각에서, 행동에서, 사회 기관들의 구조에서-이 가득 했었다. 헌데 종교 개혁과 르네상스 이후 현대화의 파도가 지구를 엄습하더니, 세속주의가 당연한 역사적 과정으로 성스러운 것들이 차지하고 있던 분야들을 약화 시키었다. 머지않아 성스러움은- 어쩌면 개인의 영역에서는 자리를 잡을 지 몰라도, -모두 사리질 것이다. “C. Wright Mills

그러나 세속화 이론을 묻어버리기에는 성급함 감이 있긴 하지만, 종교심들이 사라지기는커녕 9.11 사태와 교황 바오로 2세의 죽음, 이라크 전쟁 등을 보면서 세계의 종교심은 오히려 현대 사회에서 더 깊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이, 세속화에 대한 이론은 그 예언자적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음을 증명해 가고 있다. 문제는 종교심이 순수한 기독교적이거나 불교적이기보다 여러 종교가 혼합한 형태의 신비주의적이고 샤마니즘 적인 종교로 부상해 가고 있는 것이 현대화와 역행 하고 있는 현상이라 하겠다.

후기 공산주의 사회인 동 유럽에서 정교회의 전통을 믿어온 신자들이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고백하면서도 정교회 전통을 지키는 것과, 서구 유럽에서 세속 인본주의라고 자칭 하면서도 동양의 종교에 심취하는 현상은 인간에게서 종교를 완전히 지울 수 없다는 단편을 보여주는 것이다.

3. 현대화 : Modernization

현대화는 우리 사회가 제조와 상업을 목표로 도시들을 구성하도록 요청하는 과정이다. 당연히 자본주의 에 의해서 굴러가게 되고 기술의 혁신을 통해 유지하게 된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지도를 새롭게 그리게 할 뿐만 아니라 내면의 삶을 새롭게 편성하게 한다. 현대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영역 -가족이나 개인적 영역 과 사회적 활동 영역을 분명하게 선을 긋도록 하게한다. 즉 개인적 영역에서 신앙이나 가치관 등을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사회적 관계에서는 생산과 소비를 주력으로 하는 분야에 종사하게 한다.

Modernization 의 주요 요인들
a. 자본주의 : Capitalism
19세기 산업혁명의 여파로 증세 통합주의 (Synthesis) 가 붕괴되면서 일어났다. 그리고 민주적인 자유세계의 사회에서 발전되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주의는 사회구조를 제조적 (Manufacturing), 생산 (Production), 소비 (Consumption)
를 목적으로 사회를 재 구성하였다. 경제, 은행, 법률, 통신, 교통의 체계 등이 중심이 되었다. 그것은 우리의 세계와, 생활양식, 경험, 가치, 기대 등을 새로 만들어 주었다. 삶을 안락하고 편리하게 꾸며 보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물질적 풍요로움을 바라게 하고 그것은 자연적으로 생산 기술을 발전 시키어 대량 생산과 시장 그리고 소비를 권장하는 문화를 조장한다. 우리는 이에 대해서 18세기 중반에 존 웨슬리가 탄식한 소리를 들어야 한다.

내가 걱정 하는 것은 부가 증가 하면은 종교의 본질이 떨어지는 것이다. 부가 증가하게 되면 마음이 거만 해지고, 세상을 사랑하게 되며, 육신의 자랑과 안목의 자랑 정욕의 자랑을 일삼을 텐데 그러면 당연히 영성은 부패하는데 그것을 막을 방편은 없는가?

b. 기술 : Technology
현대 자본주의에서 기술은 본질적인 요소이다. 지식, 의료, 기계, 생산이 중요하게 되었다. 삶을 합리적으로 계산하여 사는 것도 중요하게 되었다. 이익이 가장 효과적이고 윤리적인가를 계산한다.

c.도시화 : Urbanization
세계적인 현상이다. 도시는 자기들만의 독특한 심리학적 분위기를 만든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사람들이 유럽의 도시들로 이주하면서 자신들의 (Ethnic identities) 문화적, 관습, 언어, 종교, 가치들을 가지고 들어왔다. 따라서 다양하고 새로운 문화적 환경이 조성되면서 세속 에큐메니즘이 형성되고, 다원주의가 요구되면서 상호 관용과 (Tolerance) 개인적 공간이 요구된다. 데이비드웰은 '아시아와 중앙 아메리카의 대량 이주가 자신들의 National unity 를 약하게 하고 옳고 그름에 대한 일치감을 붕괴시켰다' 고 했다. 도시 생활에서 미덕이나 자비심은 없다. 세를 못 내면 떠나야 한다.

d. 통신 : Tele communication
T.V 가 우리 삶의 모든 가치와 스타일을 만들어 간다. 세계의 모든 사건들을 안방에서 본다. 전쟁, 기근, 테러, 데모, 홍수, 재난, 비행기, 총기 사고, 정치싸움, 종교행위, 동성연애 등. 삶의 최고의 가치와 목적은 오락에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도덕적 가치의 기준은 거리가 멀다. 새로운 지구촌 문화를 만든다. (New global village culture) 어느 문화나 인종 언어집단도 자신들만이 우월하다고 말하기 어렵게 되었다. 현대사회가 우리들의 세계에 소개되기 전에 문화는 지역적이었다. 의미나, 도덕, 신앙, 관습 등은 그 지역의 역사와 종교에 특정, 한정적 이었다. 현대화가 그 문화적 벽을 얇게 하고 있다. 어디에서나 동일한 음악, 즉석음식, 청바지, 티셔츠, 영화, 소비충동, 같은 뉴스, 선전 등이 동시에 파리와 서울 등에서 볼 수 있다. 의사, 변호사, 배관공, 난방설치, 회계사, 섹스 파트너등이 현대사회에서 가장 선호하는 사람들이다.

'현대화가 우리를 시골 스러운 촌뜨기에서 자유롭게 해주었다. 즉 세계를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여러 사람들에게 그리고 누구에게나 연결시켜준다. 세계 어디서나 동시에 우리들의 성취감을 만족시켜주기 때문에 우리를 편안하고 어떤 면에서는 안전하게 해준다. 또한 이것은 분명히 보다 생산적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가정을 쪼개고 있으며, 아이들의 천진 난만한 것을 빼앗아 갔으며 윤리적 가치를 희석시켰다. 그리고 하나님의 실체를 보는데 있어서 우리의 눈을 멀게 하였다. 우리를 얄팍하고 공허하게 만들었다. 한 세계는 개인적 관계에 의해 정의되고 또 다른 세계는 자본주의 세계의 기계화의 기능에 의해 정의된다. 한 세계는 가정, 집, 개인적 친구에 의해서 구성되며, 또 다른 세계는 대량 생산 체계의 상호 기능에 의해서 형성된다. 개인들은 그들이 누구냐 에 의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에 의해서 중요하게 된다.'

결론
28년 동안 선교사역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선교사에게 쓰리랑카의 ‘Sunday News’ 가 인터뷰를 했다.
" Multi-religious country 에서 자신이 어떻게 변했습니까?" 라는 질문에 " 나는 당시 타 종교에 대해서 비 관용적 이었습니다. 나의 것이 유일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성스러운 불교 사원들을 방분한 후 생각이 변했습니다. 깊은 평온과 신의 진실한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믿음의 차이는 중요치 않습니다. 내가 배운 것은 고상한 것을 추구하는 모든 종교의 이상인, 종교 안에 사랑과 자비를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사역은 그때부터 신조 Creed 가 아니고 Need 로 변했습니다. 오늘날 어떤 종교에 속했냐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종교를 헌신적으로 신성하게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나는 지금 동방 정교회 전통의 국가인 루마니아에서 14년째 선교를 하고 있다. 쓰리랑카에서 사역을 한 선교사의 딱 반을 한 샘이다. 그리고 많은 개신교 신자들이 [세례를 받고 거듭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동방 정교회의 [전통적이며 형식적이고 미신적 이라고 ] 신자들보다 종교심에서나 도덕적 삶에서 더 우월하지 않다는 말을 듣고 있다. 14년이 지나면 나도 28년이 되는데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하고 자문해 본다. 만일에 내가 정교회로 개종 할 수 없다면 무엇이 나를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할 것인가?

나는 -포스트 모던 기술 정보 사회-에서 기독교가 위기에 처하고 있다면 나는 그것이 우리의 믿음이 부족 하거나 영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삶을 통해서 증명하는 것에 실패하고 복음 전파를 위한 다양한 체널을 사용하는 것을 실패 한데서 기인 한다고 본다. 기독교가 종교로서 유럽에서 가치를 잃어가는 것은 그 종교를 실행하는 대표적 기관인 교회가 그 본질적 역할을 못 한데서 비롯 되는 것으로, 다가오는 세대의 선교는 예수의 가르침을 실현하는 영성 있는 사람들이 출현 하여 예수의 삶을 나타내 주어야 한다. 무엇 보다 도 성경을 깊이 공부하므로 하나님의 섭리와 예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 하게 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기독교의 유일성은 예수와 그의 가르침, 그리고 그 말씀에 기인한다. 기독교가 유일한 것은 예수님 자신이 유일하기 때문이며, 그 분의 말씀이 아직도 살아있기 때문이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기독교의 유일성은 “예수를 노숙자로” [homeless Jesus] 만들지 않는 데서 가치를 나타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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