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유럽 선교 를 통해 유럽을 복음 화 하라

동 유럽 선교 를 통해 유럽을 복음 화 하라

정홍기 0 2,043 2006.09.01 02:02
동 유럽 에서의 선교 정홍기: 루마니아 선교사 들어가는 말 유럽 연합에 가입한 나라 중 시민들 대 다수가 아니면 주요 소수 민족들이 스스로를 기독교 교단에 관련되어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헌데 유럽 헌법에 자신들의 오랜 문화와 역사의 유산인 기독교의 원리들을 포함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하지만 2004년도에 가입한 나라들은 [주로 동 유럽에서] 기독교적 가치가 어떤 형태로든지 헌법에 명시되기를 바란다. 스칸디나비아의 일간 신문이 “유럽 헌법에 기독교의 가치를 지우고 다른 가치로 대치 하는 것은 엄청난 실수이며 많은 사람들을 배척하고 새로운 벽을 쌓는 결과가 될 것이다” 하였는가 하면, 인본 주의자들과 일부 사회 학자들 그리고 동성 연애 자들은 유럽의 영적 도덕적 유산인 기독교를 버리고 다원주의인 유럽역사의 문화적 유산을 이어가야 한다 하며 헌법에서 하나님과 기독교적 가치가 빠진 것은 정말 다행스런 일이라 하고 있다. 유럽 연합의 새로운 헌법 1장 2조에 의하면 유럽 연합은 모든 유럽 국가들에게 열려 있으며 그 국가들은 유럽 연합의 가치를 존중하고 그 가치에 충실해야 한다. 그 가치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민주주의, 평등, 법의 통치, 그리고 인권과 소수 민족을 존중 한다고 되어있다. 이 가치들은 모든 회원국들에서 동일하며 다원주의와 차별이 없이 관대하고 정의로우며 단결하고 남녀가 평등하다 라는 전문을 갖고 있다. 헌법 전문 어디에도 자유와 평등 평화에 기초가 되는 기독교적 가치관이 삽입된 곳은 없다. 유럽은 지금 하나님을 축출하고 세속주의가 헌법을 대신하는 것에 지극한 자긍심을 갖고 있다. 따라서 유럽은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세속적인 대륙이며 선교 하기가 매우 어려운 지역이 되었다. 교회의 자리가 조금씩 비고 목회자가 되겠다는 후보생들이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아예 교회 문을 닫거나 무 슬림 교도들에게 팔리는 경우도 있다 헌데 공산주의의 통치아래 있었던 동 유럽의 교회들은 최소한 지금까지는 서 유럽처럼 그렇게 세속적이지는 않았다. 공산주의 와 많은 타협 자들에 의해서 기독교의 본질이 흐려지긴 했지만 아직도 뿌리가 뽑힌 상태는 아니다. 하지만 유럽 연합의 확산 과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현대화가 서구에서 확산되고 있는 세속화를 부채질 하고 있으며, 많은 이민자들과 유럽 연합의 확산이 다원주의 문화를 형성해 가면서 기독교의 가치를 흐리게 하고 있다. I. 복음이 들어오게 된 배경 사도행전 16장 에서 비두니아로 [ 비두니아는 터어키의 북 족에 위치하고 있어 계속 올라가면 흑해를 만나 더 이상 뻗어 나갈 수 있는 발판을 잃는다] 가고자 애쓰고 있던 바울을 성령께서는 그가 드로아로 내려오자 마케도냐 사람 하나를 보내어 그를 유럽으로 건너오도록 청한다. 밤에 환상을 통해 마케도니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이 네압볼리에 도착 하면서 유럽 선교가 시작 되었다. 이때부터 기독교는 그리스와 터키 발칸반도에서 그리고 로마로 전해지면서 현대 유럽 문명의 기초를 놓아갔다. 전 덴마크 수상인 Flemming Kofod Svendsen 씨는 “만약에 복음이 유럽에 전해지지 않았다면 유럽의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라고 강조한바 있다. 어떤 사람들은 동 유럽과 중 부 유럽도 유럽의 기독교 역사에 한 부분임을 잊고 있는 듯 하다. 공산주의 시대 조차도 이들 나라에서의 기독교의 역사를 온전히 말살하지는 못했다. II. 현대 선교 운동의 중심지 1989년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동 유럽에 복음을 앞세운 선교사들이 들이 닥치었다. 심지어는 이곳의 문화나 언어를 전혀 모르는 체 동 유럽에 예수를 전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갖고 들어온 선교사들도 허다했다. 마치 수 세기 동안 이곳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듯 보였다. 혹자는 말하기를 동 유럽에서 필요한 것은 공산주의 선전과 공산주의와 타협한 교회들에 의해서 구겨진 예수의 모습을 새롭게 나태주는 것이 더 필요하다 한다. 우리 자유 세계에 있던 사람들 [특히 서방 세계] 은 마치 공산주의가 동 유럽에서 기독교를 완전히 말살해 버린 것처럼 착각 한 나머지, 이곳에 새로운 교회들을 개척하여 기독교 문화를 세워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산주의 통치기간 동안 동 유럽에서 기독교 전도가 완전히 금지되거나 정지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예를 들면 루마니아의 “주님의 군대” 사람들이 결혼식과 장례식 기간을 통해 활발한 전도활동을 펼쳐 왔음을 알아야 한다. 지금 동 유럽의 나라들은 최소한도 서 유럽의 나라들 못지않게 기독교적이며 신앙심은 오히려 더 깊은지도 모른다. 서 유럽에서는 평생 세 번 [태어나서, 결혼식 때, 죽은 후] 교회에 간다면 동 유럽에서는 일년에 최소한 두 차례는 [부활절, 성탄절 ]교회에 간다. 사실 동. 중부 유럽은 현대 선교 운동의 발상지 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18세기 니콜라스 진셀돌프가 독일의 헤룬 후트에 기독교 공동체를 세운 것은 당시 선교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으며, 폴란드 헝가리 게 신부인, Karl Heinrich von Bogatzky, (1690-1774) 는 1750년도에 가장 오래된 선교 찬송을 쓰기도 하였다. 그는 진셀돌프와 같은 시기에 Halle 에서 공부하였다. III. 과거 선교의 중심지가 새로운 선교지로 안타깝게도 유럽은 이제 더 이상 기독교 대륙이 아닌 것을 인정하고 있다. 19세기만 해도 유럽은 기독교 선교를 위한 주요 대륙이었으나 교회활동의 중심지가 대 부분 지구의 남쪽 대륙들로 옮겨 가면서 지금은 ‘지구촌 모두가 선교 지다’ 라는 새로운 말을 갖게 하고 있다. 당연히 유럽도 선교지가 되어있다. 세속화에 깊이 물들어 있는 유럽은 전도를 하거나 재-전도를 해야 할 선교 지이다. 어떤 면에서 후기 기독교인 유럽에서의 전도는 제로에서 시작하지는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사람들이 기독교의 기본적인 내용들을 알고 있으며 기독교적인 복음을 심하게 거절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더 어렵게 하기도 한다. 개혁주의 운동, 경건주의 운동 등 기독교 전통에 면역되어있는 유럽인들에게 순수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과제인 것은 분명하다. 교회생활에 적극적이지 않거나 교회 생활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유럽인들에게 생명력 있는 기독교 생활을 전해야 할 책임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졌다. 1985-1995년 까지 유럽 위원회의 의장이던 Jacques Delors 는 말하기를 “만일 우리가 향후 10면 안에 유럽인들에게 영성을 그리고 삶의 목표를 제시해 주지 않으면 우리는 경쟁의 게임에서 패하게 될 것이다” 했는데 이미 그 10년이 넘어갔다. 그의 말에 의하면 유럽의 분위기를 영 성으로 이끌고 갈 교회나 지도자가 필요하다. IV. 동. 중부 유럽: 새로운 선교지 동 유럽의 “종교적 지형학” 이라는 글을 쓴 Paul Mojzes 는 동. 중부 유럽을 ‘국적의 무지개’ 와 같다고 표현 하였다. 예를 들면 한 80세 정도 된 노인들 중에는 자신이 이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자신의 지역이 여러 다른 국가에 편입되는 것을 경험한다. 동 슬로바키아에 Kosice 라는 마을은 1918년 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주의 영토 이었다. 1918-1938년 사이에는 체코 슬로바키아 공화국에 편입된 후 1938-1945 사이에는 헝가리에 편입되며, 1945-1992 년 사이에는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나 1993년 1.1일부터는 슬로바키아 공화국의 일부가 된다. 즉 자신의 신분이 자주 바뀌므로 자신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세속화가 가속화 되어가며 개신교와 가톨릭 그리고 정교회가 긴장하고 있는 동 유럽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분명하게 전하고 기독교 사역 자들을 훈련해 가는 것은 무한한 기회이기도 하다. 이 기회가 종교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는 동 유럽에서 잃어가지 않도록 영성 있는 기독교인들의 활동이 필요하다. 기독교 신앙이 오래 전에 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이들의 역사와 문화에 한 축을 형성하여 왔으나 공산주의로 인한 상처가 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것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이곳의 교회들이 복음으로 새로워 지고 자신들의 문화의 뿌리를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가. 과거의 상처들 1989년 동 유럽의 붕괴는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인종적 변화를 초래 하였다. 공산주의 방식의 삶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향한 새로운 생각과 접근이 필요하게 되었으나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는 아직도 멀기만 하다. 1. 책임감 결여 동 유럽의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대 부분의 이곳 사람들도 공산주의가 남긴 가장 깊은 상처 중 하나는 ‘책임감의 결여’ 라는 것이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 자녀들의 교육에 대해서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의 문제는 아주 심각하기만 하다. 정부나 정부 기관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기에는 그들도 너무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 거대한 기계에 붙어있는 자그마한 부품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는 동 유럽 사람들은 정치와 경제 교육은 자신들의 비즈니스가 아니다고 팽개치고 있다. 공산주의 통치기간 동안 기독교인들은 사회 활동에 제한된 기회와 함께 이류 시민으로 간주되었다. 자연히 그들은 열등감을 갖게 되고 그 열등감은 그들의 사고와 행동에 깊은 영향을 미치었다. 기독교인으로 알려진다는 것은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신체적 장애인으로 사는 것과 마찬 가지였다. 따라서 전도를 하기보다는 대 부분의 시간들을 같은 교단의 사람들과 교제하고 어울리는 것에 치중하였다. 당연히 자신들의 책임을 수행하는 것을 배우지 못하였으므로 목사들이 과잉적으로 그들을 보호 해야만 하였다. 신자들의 개인적 삶에서 결정을 해야 할 일들이 있을 때 대 부분이 목사들에게 문의 하였으며 목사들은 신자들의 관계나 가정의 삶 까지도 일일이 챙겨 주어야만 하였다. 목회자들은 이들에게 하나의 정신적 지도자 이어야만 하였다. 2. 결속의 결여 동 유럽의 교회들에 또 하나의 깊은 상처는 결속의 결핍이다. 공산주의의 교묘하고도 효력 있는 정책은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서로 신뢰하지 못하게 하는 것 이었으며 교회의 성도들 간에 서로 불신 하고 두려워하도록 소문을 만들어 퍼뜨리는 것 이었다. ‘누가 당신을 비밀경찰에 고발할지 아무도 모른다 라는’ 식으로 소문을 낸다. 당연히 동 유럽의 교회들은 여러 교단들로 분리되는 아픔을 가져야 했다. 이 분리가 수 많은 선교 사역을 하나로 묶지 못하고 분리하여 사역 하게 하고 있다. 3. 개인적인 과 대중적인 것에 대한 분명한 분리 세 번째 공산주의가 남긴 깊은 상처는 개인적인 삶과 대중 장소에서의 삶을 분명히 나누는 것이다. 잔혹한 공산주의 통치자들은 신앙을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유지하도록 압박하였다. 따라서 게토 멘탈리티가 형성되었다. 교회는 사회에 적합하지가 않으며 어떤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면 안 되는 낡은 그림과도 같이 간주 되었다. 교회는 머리에 스카프를 쓴 노인들에게나 적당한 것이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 영역’을 형성 해야만 하였다. 따라서 자신의 신앙 영역을 지키며 사는 스스로는 거룩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자신의 영역 밖 범주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은 속물로 간주하여 기독교를 사회에서 완전히 분리해 놓는 결과를 낳았다. 마치 하나님과 개인적이고 실제적이며 감정적인 관계를 갖는데 있어서 아주 편협한 영성을 강조 하며 유럽에 많은 영향을 미치었던 19세기의 경건주의 와도 같다. 기독교와 사회는 따로 히 분리해서 생각 할 주제가 아니다. 예수가 우리에게 “빛 과 소금이” 라고 했을 때 그것은 기독교인들의 사회적 책임을 말한 것일 것이다.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에 관한 비전을 넓게 알게 하는 일이 필요하고 남을 정죄하기보다 자신을 돌아보고 모든 것이 세속적이라고 보는 극단적인 생각을 바꾸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동 유럽에서 과도기에 있는 사회의 변화보다 더 시급하게- 그런데도 더디고 있는 것은- 사람들의 정신, 세계관, 신앙 관을 바꾸어 주는 것이다. 이것은 거의 모든 기독교 선교사들에게 커다란 도전이다. 나. 주요 도전 들: 개종 동 유럽에서 가장 도전적인 것은 개종에 관한 이슈다. 미하엘라는 정교회에서 자라왔으며 오빠가 신부이다. 어려서 세례를 받았고 교회도 가끔 가며 성경은 읽어서 지식을 갖춘 것은 아니나 오랜 문화적 틀 속에서 들어서 알고 있다. 미하엘라에게 예수를 알려주고 다시 세례를 받게 하는 것은 개종을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최근에 우리 교회에 나오고 있는 오비디우 는 정교회 전통에서 자라왔으며 정치인 이요, 경제인이요, 사회학자이다. 그 주변에 있는 많은 그의 동료들은 그가 개신교로 개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심심찮은 놀이 거리를 만들 것이다. 오비디우는 자신의 개종이 가져다 줄 시련의 깊이를 알지 모르는 체 오늘도 우리의 성경공부에 참여하고 있다. 게오르게 집사는 우리 교회의 가장 오래된 성도이다. 그리고 신앙의 본을 잘 지키는 분이셨다. 헌데 얼마 전 그가 하나님의 품으로 가셨을 때 자식들이 정교회 식으로 모든 장례를 치렀다. 왜 그랬을까 하고 곰곰 히 생각 하는데 게오르게는 개종을 했지만 자식들은 그의 개종을 인정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방식이 기독교적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오랜 전통 속에 문화적 틀을 가지고 있으며 비록 그것이 미신적이 요소들이 많이 있긴 하여도 타 종교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복음주의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분파를 만들고 있는 동 유럽 선교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세운 대 부분의 교회들이 기독교 문화를 유지해 오고 있는 이곳 동 유럽에서 아주 작고 폐쇄적인 그룹들이 되어가며 변화의 사회에 적응하고 지도자가 되어가고 있기보다 우리의 도움에 하루 하루를 연명해 가는 경우가 보인다. 이제 우리는 지난 15년 동안 과연 우리의 활동이 적절 했는가에 대해서 조용히 평가를 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사역이 적절했는가, 성경적 이었는가, 신학적 가르침은 그곳의 상황들에 적절 했는가, 리더를 훈련시키는데 적합 하였는가 등 개종은 무신론자나 불가 지론 자 등 아니면 기독교 종교에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 해당 되는데 그런 사람들은 누구인가? 모든 기독교 교회에 전통을 지키는 자들은 기독교인인가? 참으로 유일한 기독교는 어떤 것인가? 동 유럽에서의 선교는 어디에 정의를 두고 하는가? 어떤 형태로든지 교회와 관련 지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선교의 대상인가? 동 유럽에서의 개종의 문제는 개인의 권력이나, 문화적 삶, 세대간의 차이, 재정적 독립과도 관계가 있으며 그것은 기존의 교회나 선교사들을 통해 개척되는 교회에 다 포함 되어있다. 다. 뿌리 깊은 문제들 1. 나라의 동질성을 세워가는데 있어서의 종교의 역할 우리 선교사들은 가끔 우리의 선한 의도가 현지인들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하게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대 부분의 동 유럽의 나라들은 아직도 국민의 결속을 다져가는데 치중 하고 있다. 따라서 종교는 결속력 있는 동질성을 세워가는데 결정적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역사적인 교회들이 한동안은 중심적 역할을 못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대 부분 문화의 중심 축에 있다. 내 생각에는 어쩌면 이것이 깨어져야 하지만, 우리가 세운 교회들과 신자들이 대중 속에서 소수로 폐쇄된 삶을 관계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기독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마리아는 정교회 문화에서 자라서 장로교회를 다니는데 학교는 네오 프로테스탄트 계통의 학교를 다닌다. [침례교, 오순절, 형제들의 교회 등] 그녀는 교리적으로 이질감을 느끼고 교회 생활의 차이점을 극복해야 하며 특별히 동료가 없이 늘 혼자이어야만 했다. 같은 개신교 동료들 속에서 동질감을 찾지 못한 그녀는 결국 뿌리깊은 민족의 동질감을 찾아야 하는 절박감을 가지고 우리 교회를 등져야 했다. 선교사는 대부분이 초 교파적인 종교의 범주에 속하며 민족의 동질화 결속에 최대의 장애가 되기도 한다. 당연히 정치 지도자들이나 종교 지도자들에게 심한 저항을 받기도 한다. 물론 선교사들은 보다 더 광범위한 주제들 진리나 구원, 초 자연적 가치, 다양한 문화 즉 국제화에 관련 있는 그래서 다수인 국가의 종교에 반하는 경우가 있다. 2. 기독교인 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 개종을 목표로 하는 선교사들에게 비 기독교인 이란 대부분 전통적인 교회의 멤버들도 포함한다. 게다가 역사적인 개신교의 전통들을 자유주의 라는 잣대로 평가하여 자신들에 의해서 전도를 받아야 할 선교의 대상으로 정당화 하기도 한다. 복음주의적 개신교 [유럽에서는 자유교회라고 부른다] 선교사들은 역사적인 교회들에게서 불법적이고 문화적으로 손상을 입히는 집단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기독교를 정의함에 있어서 유럽의 국가 교회들은 마치 ‘어머니들이 자기들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을 안고 있는“거와 같다. 그리고 재 세례를 받은 복음주의자들은 그들에게 엄한 아버지 즉 주 예수를 믿고 그 믿음에 따라서 행동하는데, 믿음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교회의 멤버들은 당연히 전도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 동안 ‘하나님은 손자가’ 없기 때문에 유럽의 교회 밖 사람들에게 전도를 해야 한다고 주장 하던 중 전도 가 아니고 ‘요리 문답’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던 정교회 신부의 말을 기억 하고 있다. 3. 개척 교회에 대한 강한 신념들 개종에 대한 문제는 대부분의 복음적인 선교사들이 기존의 교회들이 비교적 활동적인 지역에서 조차도 새로운 교회들을 개척하려는데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선교사들은 이미 세워져 있는 교회들을 활성화 하기보다 새로운 교회들을 개척하려는 대는 무슨 연유인가? 그것은 현지 교회들을 잘 모르거나 아니면 잘못된 통계들을 가지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그 동안 자유세계의 교회들은 동 유럽의 기존의 교회들 [루마니아 정교회, 헝가리 개혁교회, 체코 감리교회] 과 접촉할 기회가 제한 되어 있었으며 동 유럽에 선교를 하던 단체들이 대 부분 자유 교회에 속한 사람들 이었다. 따라서 우리가 접하는 통계나 소식은 동 유럽의 기존 교회 지도자들에게서 듣는 소식보다 선교에 열중하던 소수에게서 듣는 소식들이 대 부분 이었다. 물론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는 것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씀에 근거하고 있기도 하지만… 이런 사실을 모르고 동 유럽에서 더 많은 개척 교회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선교 지도자를 이곳 교회 지도자들은 비웃고 있다. 어떤 선교사가 ‘헝가리 개혁 교회는 그들의 교만을 회개하고 자신들이 세계를 지배하지 않고 있으며 하나님을 다루시지 못하신 다는 사실을 알고 겸손히 회개 해야 하며, 나는 헝가리 개혁 교회를 사랑 하지만 하나님은 그 개혁 교회 없이도 일 하실 수 있다고” 말 하여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4. 모금 활동 동 유럽에서 개종을 위한 선교에서 큰 문제는 모금 즉 재정에 관한 것이다. 본국의 후원자들의 기대를 채워주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는 지역에서 일 하는 선교사들은 성공적 이야기들을 만들어 가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자신의 깃발을 세우고 독립적인 선교 단체들을 세워가는 것이 재정 을 모금 하는데 훨씬 유리하지만 선교사역은 재정을 모금하는 것이 우선은 아니다. V. 선교사들이 정말 필요한가? 선교사들은 무엇 보다 현지 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데서 결점을 갖는다. 오랜 기간 동안 고생을 함에도 불구하고 현지인의 문화에 깊이 인식하기 어려우며 메시지를 받는 사람들에게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이 어렵다. 동 유럽을 지난 20여 년 동안 방문 한 서구의 목사가 동 구의 목사에게 우리가 어떻게 당신들을 도울 수 있는가 하고 질문을 하자, 대답 하기를 첫째 기도 해 주시고 둘째도 기도해 주시고 셋째도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멀리 떨어져 계십시오 라고 했다. 우리도 가끔 그런 사람들을 만난다. 언어와 문화를 아는 면에서 자신들이 훨씬 더 유리하니 우리 선교사들은 돈 이나 후원 해 주고 멀리 떨어져 있기를 기대하는 루마니아 사람들을 야속 하다고 하기에는 그들의 말이 너무 당연해 보이지 않는가. 선교사들이 주는 관대한 선물과 약속들이 때로는 아주 좋지 않은 문화적 영적 지배를 갖게 될 수도 있다. 동 유럽에서 선교사역의 주요 문제점은 앞으로 경제가 발전할 때 더 큰 문제를 안겨다 줄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함께 하는 사역 자들을 지원 할 수 있다 할지라도 급속히 발전하는 이곳의 경제와 유럽 연합의 영향들로 우리 선교사들이 지원하는 것으로는 끼니를 연명 하기도 어려울 때가 올 것이다. 우리가 지원을 할 수 없을 때 그들은 누구를 의지 할 것인가? 동 유럽의 경제 정치는 문화는 지금 과거의 영화를 찾아가고 있다. 새로운 대안이 나와야 하는 때이다. 어떤 대안 인가? VI. 선교사역은 필요하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선교사들은 낡은 오랜 관습들에 질문을 던져주고, 금기 의 습관들을 깨뜨려 주며, 그리고 창의력 있고 새로운 건전한 것들을 알려주는 변화의 대표자들이다. 하지만 먼저는 동 유럽에서 배워야 한다. 문화와 언어를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데 변화가 필요한 부분들이 무엇인가를 배워야 한다. 선교사들을 의존하게 하는 변화들이 어는 분야에서 일어나야 하는가? 동 유럽의 지도자들이 겪는 현실적인 문제들과 신학의 상황화, 개종과 선교 등에서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함께 협동 할 수 있는 방법들은 어는 것이 있는가 등, 그래서 그 교회들의 공산주의가 남긴 상처들을 치유해 가고 밀려오는 세속화에 대처하여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선교사들이 정말 가치가 있도록 허기 위해서 나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를 제안한다. 1. 능력 1991년 부다페스트에서 있었던 로잔 세계 복음화 대회에서 후기 공산주의 사회를 복음화 하는데 필요한 6개항의 전략이 다음과 같이 채택 되었다 1. 동 유럽의 교회들과 선교회 들이 자국민들을 전도하는데 있어서 자신들의 사역임을 인식하고 그 능력을 갖추어 가도록 2. 전도에 있어서의 모델과 격려를 통해 협력하도록 3. 그리스도가 알려지지 않은 곳 에 가도록 [어딘가?] 4. 열매들이 계속 맺히고 자랄 수 있도록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참여 하도록 5. 사람들과 상황들을 적절히 이해 할 때만 일 하도록 6. 온전한 윤리적 재정적 성실함을 가지고 하도록 이 선언들이 꼭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동 유럽의 교회들이 스스로 지역 교회를 새워가고 선교에 참여 하도록 이끌어 줄 수 있는데 능력이 있는 선교사가 필요하다. 이 일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 선교사들은 영성이 잘 준비 되어야 할 뿐 만 아니라 교회의 지도자 들을 잘 격려하고 변화의 상황에서 성경적인 모델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신학적 훈련이 준비 되어야 한다. 2. 협력 기존의 교회들을 생동감 있게 하려면 개인 중심의 교회 개척 지향 사역에서 함께 협력 하는 사역 프로그램들을 개발 해야 한다. 영국 선공회의 원칙에 지역 교회가 물론 우주적 교회의 일원 이기도 하지만 우선 적으로 그 지역의 전도에 일차적 책임을 갖는다. 한국 교회가 실질적으로 협력 할 수 있는 방안은? 지금 동 유럽에는 잘 준비된 지도자가 필요하다. 교회 안에 밀려오고 있는 새로운 이슈들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다루어 줄 즉 동성 연애, 국수주의, 인종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교회의 영성 과 활성화, 전도와 지구촌 선교 등에 대하여. 세속화 되어가고 있고 탈 교회화 하고 있는 유럽 사람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이 가의 문제는 이제 유럽사람들의 시각보다는 제 삼자의 시각이 필요하다. 교회와 사회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등. 다 문화, 다 인종, 다 종교화 되어가고 있는 유럽에서 단일교회로 만의 개종을 강요하는 식의 전도는 이제 자리가 없다. 오히려 그 동안 지탱해온 교회들을 활성화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루마니아의 ‘주님의 군대’나 헝가리의 개혁교회, 체코의 감리교회 등은 우리의 개종의 대상이 아니라 협력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선교 지에서의 사역이 열매를 맺고 성공적 이려면 절대적의로 협력을 해야 한다. 선교사를 보내는 단체들은 이미 있는 기존의 단체나 교회와 연결하는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 이것을 무시하고 장기 선교사를 보내는 단체들이 있고 그래서 그들은 갈수록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 루마니아의 선교사들은 대부분 비자를 내기 위한 수단으로 현지인 교회를 이용 하다가 지금은 독립적인 선교기관이나 교단들을 세워가고 있다. 현지 교회들과 협력은 아예 생각에도 없었다. 별로 비 효과적으로 보이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현지 교회와 관계를 세우고 협력을 해 가는 것은 그리고 극도로 세속화 되어가고 있는 사회에서 복음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교회들이 협력해야 한다. 3. 개선 무엇 보다 도 심각한 것은 세속화 되어가고 있는 동 유럽의 선교를 위해 선교사들의 훈련의 개선이다. 유럽의 재 전도와 교회의 재 활성화를 위해 즉 교회 출석을 안 하는 교인들과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우리는 교회를 개척 하는 것과 교회를 갱신 하는 것 사이에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교회들과 어떻게 협력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선교사 훈련의 새로운 페러다임이 필요하다. 현대 문화에서의 선교 즉 현대 문화를 정의하고 새로운 선교 훈련 페러다임을 세워야 한다. 그 동안 동 유럽을 위한 선교 훈련 프로그램은 없었다. 대 부분의 선교사들이 특별한 훈련이 없이 나와있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현재 선교 지에 있는 선교사들이 자신들의 사역을 조명 해 보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훈련 프로그램이 필요하고, 현지 기존의 교회들 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협력할 수 있는 방안들을 강구 하도록 이끌어 줄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당연히 누가 그 일을 해야 하는가의 문제에 부딪힌다. 왜냐하면 유럽 선교에 오랜 경험을 갖춘 선교사들이 부족하고 선교 훈련이나 사역의 모델이 될 수 있는 자료가 부족 하기 때문이다. 우리 선교회가 그 동안의 경험을-미흡하지만-토대로 이 일에 나서야 할 때이다. 마치는 말 유럽의 고전 도시 동 유럽의 교회들은 지금 엄청난 도전을 받고 있는데 그 일을 하기에 우리들은 너무 연약하다. 우리들을 혼자 하게 하지 말자. 동 유럽은 영향력 있는 사람, 협력자, 조력자, 잘 훈련된 선교사, 섬기는 자 들이 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능력 있게 증거할 자를 기대한다. 삶의 능력과 성실함을 통해서 자신을 비우고 자신의 야망을 포기하고 기꺼이 섬기기를 즐겨 하는 그리고 복음이 새롭게 발전해 가기를 기대하는 선교사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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